'갈라파고스 신드롬': 일본 전자 산업 쇠퇴의 원인과 교훈

1. 갈라파고스 제도와 '종의 기원'

갈라파고스 신드롬은 '갈라파고스 제도'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남아메리카 대륙의 에콰도르 령인 갈라파고스 제도는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의 자연선택론, 즉 진화론을 설명하는데 큰 영감을 준 장소였습니다.

이 제도는 남아메리카 대륙과 약 1천 Km 정도 떨어져 있으며, 태평양 적도 주위에 위치한 19개 화산섬과 주변 암초로 이루어진 군도입니다. 섬이기 때문에 오랜 기간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았고, 육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독자적으로 진화한 종들이 고유한 생태계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1835년 이 섬을 찾았던 다윈은 잘 보존된 자연 생태계에서 다양한 생물과 동물의 진화 과정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갈라파고스의 생태계를 통해 생물의 진화론을 확립하며 세계 과학사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 '종의 기원' 개념을 제시하게 되었습니다.

2. 갈라파고스 신드롬

이러한 현상은 경제 분야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갈라파고스 신드롬'은 세계적인 기술력으로 만든 상품이지만 자국 시장만을 생각한 표준과 규격을 사용하여 국제적으로 고립되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3. 일본의 '잘라파고스(Jalapagos)' 신드롬

일본과 갈라파고스를 합쳐 '잘라파고스'라고도 불릴 정도로 일본은 갈라파고스 신드롬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힙니다. 이 단어는 최고의 기술로 제작되었지만 세계 시장과 단절되었던 일본 제품의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만든 용어입니다.

일본은 소니, 파나소닉 등의 기업을 주축으로 IT 분야에서 독보적인 발전을 해온 나라이지만, 1990년대 이후부터는 다른 나라의 기업들에게 시장을 내주게 되었습니다. 분석 결과, 세계적인 표준을 무시하고 내수 시장만을 위한 제품을 생산한 것에 그 원인이 있었습니다.

4. 일본 전자 산업의 쇠퇴와 그 원인

게이오 대학교수이자 휴대전화 인터넷망 아이모드(I-mode)의 개발자인 나츠노 다케시는 2007년 일본 무선전화 시장 보고서에서 이러한 현상을 두고 '갈라파고스 신드롬'이라고 명명했습니다.

일본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모바일 인터넷 환경이 구축되었고, 네트워크 환경을 기반으로 다양한 서비스 기술들을 시장에 선보였습니다. 하지만 일본의 IT 기업들은 커다란 내수 시장을 바탕으로, 자국의 시장 반응과 소비자들의 요구를 우선시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기업들은 내수 시장에 특화된 기술을 바탕으로 제품을 개발해 국제 표준에 기초한 세계 시장과는 다른 방향으로 발전했습니다. 이는 일본이 가진 기술 수준과 혁신성이 세계 최초라는 평가를 받았음에도 세계 시장에서의 영향력 감소와 일본 IT 시장마저 다른 나라에 내주는 위기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5. 삼성과 LG의 세계 시장 석권

미국 뉴욕 타임스는 2009년 소니의 휴대폰 사업 부진을 진화론에 비유하여 '갈라파고스 신드롬'이라고 보도했습니다. 브랜드 파워에 고취되어 내수에만 초점을 맞추면서 세계 시장 흐름과 동떨어진 결과라는 지적이었습니다.

일본의 전자산업 역시 '갈라파고스 신드롬'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세계 최초로 LCD(액정 디스플레이) TV를 제작한 샤프(SHARP)는 LCD 시장이 포화 상태에 다다르며 OLED(자체 발광 디스플레이)가 차세대 디스플레이 기술로 각광받을 때, 기존에 경쟁력 우위를 가진 LCD 분야에 투자를 고집하게 되었습니다.

세계 TV 시장의 흐름은 해상도나 화면 크기에 집중되었지만 이들은 브랜드 강조 전략을 추구하였고, 그 결과 과잉 생산과 경쟁력 하락을 겪으며 2011년부터는 폭스콘(foxconn)에 경영권을 넘겨주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결국 삼성, LG 등 경쟁 기업들이 세계 시장을 석권하게 되었습니다.

6. '갈라파고스 신드롬'의 교훈

갈라파고스의 자연은 아름답지만, 이처럼 '갈라파고스'라는 말은 전혀 아름답지 않은 '시대착오'라는 말과 거의 동의어로 쓰이고 있습니다. 치열한 글로벌 경쟁 시대 속에서 기업들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국제적인 기준을 따라가거나, 선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